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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3D프린팅 역사

최초의 3D프린팅 기술은 1984년 미국의 척 헐Chuck Hull(Charles W. Hull; born May 12, 1939)이 개발한 SLA 방식이다.

SLA(Stereolithography Apparatus) 방식은 광경화성수지를 자외선 레이저로 경화시키며 제작하는 방식이다. 아래 영상을 참고하면 이해가 빠르다.

https://youtu.be/_CISyU3D3WE

광경화성수지는 흔히 레진이라 불리며 치과나 네일아트에서 사용되는 소재를 예로 들 수 있다.

레진이 담겨있는 수조(Vat)에 자외선 레이저로 한층 한층 경화시키며 쌓아가는 방식이다.

척 헐은 1986년 특허출원 후 3D시스템즈를 설립하고 ‘SLA-1’ 모델을 출시했으며, 공식적으로 최초의 3D프린터로 기록된다.

또한, 제품개발로 이어지지 않아 최초의 3D프린팅 기술이라는 타이틀은 얻지 못했지만, 1981년 4월, 일본 나고야시립공업연구소 히데오 코다마(Hideo Kodama) 박사가 SLA 기술의 기초가 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광경화성 폴리머를 이용한 플라스틱 모델의 자동 제조 방법(Automatic method for fabricating a three-dimensional plastic model with photo hardening polymer)”

“3차원 디스플레이 정보를 이용한 입방형 모형 자동 제조 방법(Automatic method for fabricating cubic shapes, as a three-dimensional information display method)”

이어서, 두 번째 3D프린팅 기술은 1989년 미국 스콧 크럼프(S. Scott Crump)가 개발한 FDM 방식이다. 스콧 크럼프는 글루건을 사용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로 3D프린터 개발까지 이어졌다고 밝혔으며, 1992년 스트라타시스를 설립하고 제품을 출시했다.

스콧 크럼프의 STRATASYS와 척 헐의 3DSYSTEMS는 현재 전 세계 3D프린터 시장점유율 1위, 2위 기업이며,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기술은 FDM 방식이다.

이 외에도 SLS, DLP 등 3D프린터에 적용되는 기술들이 1980년대에 개발되었다. 이후 특허권 존속 기간(최대 20년)이 지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3D프린팅 기술이 확산되었고, 2010년대 이후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약 40년 전에 개발되었지만, 미래 기술로 손꼽히는 3D프린팅, 이에 「오래된 미래 기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2010년 이후 3D프린팅 산업의 흐름을 살펴보면,

“3D printing that has the potential to revolutionize the way we make almost everything”

https://youtu.be/Yw1jAdMgsW8

2013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인 3D프린팅 붐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은 국립 적층제조 혁신 연구소(NAMII, National Additive Manufacturing Innovation Institute)를 설립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 밝혔고, 언론 매체 헤드라인에는 3D프린팅 뉴스가 도배되듯 넘쳐났다.

도깨비방망이에 비유되며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기대감도 한껏 고조되었고, 글로벌 3D프린팅 시장점유율 1, 2위를 기록하는 3D시스템즈와 스트라타시스는 인수합병 경쟁으로 덩치를 키워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중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보급형 3D프린터 시장은 급격히 추락했다.

스트라타시스가 인수합병한 보급형 3D프린터 브랜드 Makerbot은 구조조정을 시행했고, 3D시스템즈는 보급형 3D프린터 시장 철수를 발표했다.

대중의 실망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출력품질 – 금형 및 사출성형 제품에 익숙한 소비자는 레이어가 두드러지는 보급형(FDM) 3D프린터의 출력품질에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기 보급형 3D프린터 출력품질은 평균적으로 상당히 저조했고, 현재는 완성도가 높은 편이고 기술특징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 만족도가 높아졌다.

둘째, 3D모델링 – 무엇이든 만들기 위해서는 금손이 필요했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디자인은 흥미 끌기에는 성공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수개월 3D모델링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함정

셋째, 가격 – 초기 50만 원짜리는 키트는 아크릴 프레임으로 안정성 제로, 품질도 엉망이었다. 제법 쓸만한 모델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데 지금의 100만 원대 수준 정도, 지금은 30만 원짜리 키트형 제품도 제법 잘 나오고 400~500만 원이면 대형 출력이 가능하다.

 

땅따먹기 식으로 인수·합병하던 3D시스템즈와 스트라타시스는 경영난을 구조조정을 통해 해갈하고, 3D프린팅은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로 치부되었다. 주가 급락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이러한 여파는 국내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만 메이커 양성, 4차 산업혁명 등 야심 찬 워딩으로 지원사업을 쏟아내던 정부와 청년창업을 꿈꾸며 도전했던 젊은이들이 안타까운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3D프린팅 산업의 한계점이 기술 자체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3D프린팅 시장은 두자릿 수 성장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당시 언론의 과도한 홍보가 아픈 성장통을 겪게 했다.

현재는 3D프린팅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교육 분야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융합 교육의 형태로 디지털 제조 장비를 구축한 메이커 스페이스의 확산이 두드러진다.

앞으로 약 5~10년 뒤, 예전 PC 산업처럼 3D프린팅을 익숙하게 접한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면, 보다 본격적인 산업의 확장을 기대해본다.